그 시대에 호크니가..
1. 사진은 시간성이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을 포착
2. 공간을 여러각도에서 사진으로 촬영시 공간이라는 것은 환상...?
3. 폴라로이드로 같은 장소를 여러 구도, 시간차를 두고 찍어서 중첩되게 이어붙이면 각각의 부분들은 '시간적 차이' 를 드러냄과 동시에 합쳐져서 드러남.
4. 수영장 표면은 평면적으로 보이지만 깊이가 있고 또 그 깊이를 알 수 없지만 물결의 표면과 물 안이 동시에 비춰지며 드러나는 얼룩? 윤각? 패턴? 을 포착해서 평면성과 깊이를 동시에 가진 대상으로 그 시대 회화의 쟁점이었던 평면성에 대한 탈피 방향으로 '물' 이라는 대상?객체?를 선택?
5. 더 큰 첨벙에서 볼 수 있는 액자, 하늘, 건물의 평면성과 기울어진 다이빙 대, 무언가 큰 것이 물에 방금 빠진 것에 대한 튀어진 물의 형태에서 유추할 수 있는 물 속의 '깊이' 를 통해 평면성과 공간감?깊이? 를 동시에 드러내는 그림을 완성? --->> 투시, 원근을 통한 공간의 깊이감과는 다른 의미..?
6. 현대에는 장노출로 찍은 사진, 뉴욕을 10시간동안 촬영해 한장으로 레이어를 쌓아합친 사진 등 시간성을 담고 있는 다양한 사진들이 있음.
7.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진행하는 파도와
그 그림을 바라보는 나의 시간관념은
파도를 맞는 시간은 오른쪽에서 왼쪽 방향으로 역방향
나의 시선이 파도를 바라보는 (흔히 글씨를 읽는 방향)이 닿는 시간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정방향.
이러한 점에서 우리가 인식적으로 가지고 있는 시간이 흐른다, 시간이 방향이 있다 라는 지점의 오류? 왜곡?등을 드러내는 점을 의도한 그림을 호크니적 시도로 해볼 수 있지 않을까?
깊이를 가진 파도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진행
너무 난해해 보이지 않게 '일반적인 실루엣'이라는 프레임 안에서 '살짝 다름' 을 통해 관람자가 의문점을 제기할 수 있도록 유도.
파도를 정면에서 본 모습, 측면에서 본 모습, 반대편에서 본 모습, 위에서 본 모습, 아래에서 본 모습을 짜집기 해서 오른쪽으로 진행하는 파도를 의구심을 가질 만한 한장의 사진 혹은 그림으로 완성.
파도를 맞는 다는 '사건의 진행 시간'과
파도를 바라보는 나의 '시선의 진행 시간'이 서로 다른 축
x,y,z축 방향으로 진행됨을 드러내서
과학자들이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라고 하는 지점과
일반적으로 '시간이 흐른다' 라고 인식하는 점을 사고전환 시킬 수 있는 트리거를 완성?
회화가 마주한 평면성이라는 문제를 해결한 호크니의 시도? 연구? 처럼 대단한 의미는 없지만
'자 이제 시간은 어디로 흐르지?' 라고 의문을 제기하는 시도를 호크니의 작품들을 보고 떠올려볼 수 있지 않을까 싶었음.
나아가 사건에 대한 다각도의 해석, 관점과 사고방식의 전환은 무조건 긍정적인가? 에 대해 고찰.
지구가 사실 평면일 것이라는 생각은 과학적 사실에 입각하지 않는 상상.
하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에 대한 다각도적 창의적 상상력이라고 생각해 볼 수 있음.
그러나 효용가치가 있는가?
참신하고 신박하지만 사실이 아닌 것은 질서 의 입장에서 보면 혼란.
나의 다각적 관점에서 바라보기는 의미가 있는가?
의문.
이해와 납득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이해는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이고 납득은 머리로는 받아들이고 자기입장에서 인정하지 못한? 불온전한 받아들임?
우리는 모든 것을 이해해야할까?
납득 만 하고 넘어가도 될까?
싫어하는 사람을 이해해보려는 시도는 좋은 걸까 나쁜걸까?
아니면 좋고 나쁨 없이 그대로 놔두면 좋을까?
다각도적 해석은 꼭 필요한가?
다각도적 해석의 목적은 있는가?
ㄴ 현재 봉착한 문제가 있음 -----> 해결이 목적
ㄴ 이상한 사람이 있음 ------> 내가 심리적 정신적 안정감을 얻기위해 내 결론을 내고싶음.
우리는 판단하는 것을 좋아한다. 좋고 나쁘다는 1차원적 판단을 좋아한다. 가장 간단하니까.
해결을 목적으로 하는 다각도적 관점, 해석 시도는 좋을 수 있음.
예술에서의 시도는 꼭 현실적인 문제의 해결을 위한 인과성을 지니지 않을 수 있음.
예술은 모다? ㅅ...ㅏ....ㅊ..ㅣ...
그리고 내가 하는 이러한 생각도?
돈..도...없...는...데...망...상...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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