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갔던 각설이가 잊지도 않고 또왔다...
나에게는 일주일에 한번 씩 울면서 전화하는 일본인 동생이 있다.
일본인이라 사실 알려질일도 연관될 일도 없을 듯 하여 편하게 풀어놓겠다.
오늘도 어김없이 전화가 걸려와 다짜고짜 눈물이 난다고 한다.
그리고 이유가 없다고 한다. 슬프긴 한데... 이유가 없단다.
그래서 머 나름의 개똥철학으로 감정이 꼭 납득할 만한 인과가 있어서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불현듯 느껴질 수도 있다고... 나름의 위로를 건넸다. (우리 다 이불킥 하잖아 갑자기 흑역사 떠올라서)
그래도 매번 같은 소리를 할 수는 없으니 샤르트르의 구토에 대해 설명해줬다(나도 안읽었는데 설명을....)
대표적인 실존주의 철학자 샤르트르가 쓴 소설 구토 속 주인공 로캉탱은 자신이 실존함을 느낄 때 불쾌하고 마치 토할것만 같은 감정을 느낀다. 그것은 우연히 돌맹이를 줍다가, 벽을 보다가, 컵에 담긴 맥주를 보고 느껴지는 , 사물과 자신의 인식 사이에서 불일치를 느낄 때 >>>> 즉 나와 사물, 각자의 존재가 선명해지는 지점을 의식할때? 그 생생한 인식에서 느껴지는 낯설음이 마치 구토를 유발하는 것과 같다.(라고 알고있다)
실존이 선명해질때마다 느껴지는 구토의 감정이라니. 도통 알 수 없는 매커니즘이다. 로캉탱 또한 자신이 느끼는 알 수 없는 구토의 원인을 찾아 헤매고 그것을 다룬 책이다.
뭐 사실 나도 영향을 받아서 그런지 어떤지 모르겠지만 불현듯 찾아오는 자기혐오의 감정이 매우 크다.
그래서 말했다.
1. 이유없이 슬픈게 이유있이 슬픈 것 보다 좋지 않을까?
2. 난 매일 울어야하는 이유가 있지만 울지 않는 것 처럼
울 이유가 없지만 울지 않음을 참다가 참지 않아서 울게되었을 수도 있지 않을까....?
3. 사실 넌 일주일에 한번은 꼭 울도록 세팅되어 있는데 적당히 울만한 이유가 생기지않아 그냥 할당량을 채울려고 우는 거일 수도 있지 않을까?
언제나 뚜렷한 답은 없다.
음
그렇게나 선명한걸까.
나는 사람의 의식이 카메라 초점과 같다고 생각한다.
초점 어디에 맞추는지에 따라 받아들이는 정보, 인상, 모든것이 달라진다.
나는 대체로 분석적이고 비판적인 성향이 강해 자꾸만 마이너스 요소에 초점을 맞추곤 하는데 못된 버릇같다.
근데 자기 존재가 선명하게 느껴진다는 건 어떤걸까.
마이너스 플러스 같은 건 없이. 그냥 존재한다는 느낌이겠지?
사실 최면체험 때도 그렇고 가끔씩 그렇다. 내가 손가락을 움직이는 것도 발가락이 5개인것도 낯설개 느껴지는 때가 더러 있다.
그럼 차라리, 마이너스든 플러스든 좀 더 감정이나 외부적 자극에 포커스를 맞추는 것이
불쾌하고 낯선 실감을 피하는 방법이지 않을까.
이만. 내가 생각한 위로에 대해서 알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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